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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섹스는 위선적이며 섬세하고 민감하다”
이름sainturo 등록일2007.06.16 조회수690

- 섹스 이즈 코메디(Sex is comedy) -‘섹스 이즈 코메디’(감독 끄뜨린느 브레야) 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섹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섹스가 코메디라니? 제목에서 풍기는 비스름한 우리 영화는 ‘몽정기’ ‘색증시공’ 이거나 외화로는 ‘팬티 속의 개미’ ‘아메리칸 파이’ 일 거다. 이들은 웃기며, 야하고, 유치하다. 그런데 이 영화 ‘섹스 이즈 코메디’ 는 이들 영화과는 격을 달리 한다. 10대들의 금지된 섹스를 다룬 영화도 아니거니와 섹스를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발정난 수캐들의 좌충우돌 방황기도 아니다. 제목이 발칙한 만큼 내용 또한 신선하다. 섹스를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가려낸 감독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겨울 바닷가. 한 무리의 일행들이 영화 촬영에 여념 없다. 겨울에 여름 해변장면을 찍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감독은 한 술 더 뜬다. 설레는 남녀의 감정을 키스신으로 연출해달라는 주문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자 감독은 이들을 얼렁거리고 협박하면서 찍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두가 지쳐 가는 상황.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면서 신경전을 벌이던 촬영은 그만 접게 된다.



베드신을 앞두고 감독과 스텝들은 물론 배우들도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기 그지없고, 감독 역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동선에 신경이 곤두 서 있다. “냉정을 잃으면 안 된다” 며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지만, 일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배우는 영화의 재료에 불과하다’ 며 인격도 없는 소모품 취급을 하던 감독도 자연스런 연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시 배우들을 설득한다.



영화는 이처럼 베드신 촬영현장을 둘러싼 감독과 배우의 미묘한 갈등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감정은 절대 음탕하지 않아” “섹스는 위선적이며 섬세하고 민감한 작업” 이라며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는 감독. 자신은 평범하지 않고 특별하다고 우기지만 발도착증이라 양말을 벗지 못하는 남자배우. 징징거리고 삐지기 일쑤며 배우와 감독 모두 못마땅한 여자배우. 그리고 감독의 변덕에 불만인 스탭들. 영화는 이들의 이중적인 감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위선에 대해 꼬집고 있다. 섹스를 노출시켜선 안 될 금기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처럼 감정에 좀 더 솔직할 것을 강요한다. 왜 당신들은 섹스를 코메디처럼 단순하고 편하게 생각하지 않느냐?



사실 영화에는 모형 페니스가 등장하고, 여배우의 음모가 드러나는 등 상당히 야한 편이다. 그렇지만 포르노나 에로비디오와는 달리 결코 추하거나, 음란하지 않다. 그건 이 영화가 섹스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섹스를 통한 사람들의 미묘한 신경전이나 갈등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섹스는 성숙한 의식이 아니며, 갈망하면서도 두려운 대상일 뿐이며, 그 과정을 설득하는 화자는 영화 속의 감독을 통해 감독이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배우들을 컨드롤하려 하고, 스탭을 장악하려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소유와 견제에서 출발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 영화에선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마치 감독이 배우들에게 하고픈 말을 은근슬쩍 갖다 붙여 놓은 느낌이다. “우린 그들은 왕처럼 모신다. 그런데도 그들은 온갖 불만투성이다. 우린 권력을 쥘 수도 없고, 그들을 통제할 수도 없다. 우린 무능력하다. 그렇지만 우린 그들은 사랑한다. 순전히 짝사랑이지만….” 마지막으로 ‘섹스 이즈 코메디’ 를 더 한층 재미있게 보는 방법 한가지. 아전 브레야 감독이 연출한 ‘팩 걸’ 을 먼저 스크린으로 만나기를 바란다. ‘팻 걸’ 의 베드신을 ‘섹스 이즈 코메디’ 의 영화 속 영화로 재현하고 있다. 두 영화를 보고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